“미국발 보호무역주의 파고, 자동차-반도체 덮치나”
[데일리안]
세탁기·태양광 제품 세이프가드 이후 타 산업 영향 촉각
FTA 재협상 영향 속 특허소송 주목...철강·화학도 긴장
미국 정부가 세탁기와 태양광 제품에 대한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 조치를 취하면서 자동차와 반도체 등 다른 산업들도 보호무역주의 확대의 불똥이 튀지 않을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이들은 트럼프 행정부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이나 특허침해 소송 등으로 압박해 자국에 유리한 방향으로 이익을 취하면서 업계 피해로 이어지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25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세탁기와 태양광 셀·모듈에 이어 보호무역주의의 다음 타깃이 될 제품으로는 자동차와 반도체가 꼽히고 있다. 둘 모두 국내를 대표하는 산업이자 대표적인 수출 역군이라는 점에서 향후 보호무역주의 파고로 인한 악영향이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또 덤핑 제품에 대해 문제를 제기해 온 철강과 화학 등도 미국 정부의 보호무역주의 리스트에 올라가 있어 향후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 FTA 재협상 테이블 놓여 있는 자동차 ‘발등에 떨어진 불’
한·미 FTA 재협상 문제가 걸려 있는 자동차업계는 그 어느 업종보다 불안감이 크다. 특히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자동차를 양국간 대표적인 무역 불균형 사례로 지목한 상황이어서 FTA 관련 규정 개정과 추가적인 수입규제 조치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 모두 미국 현지에 생산 공장을 갖추고 있지만 국내에서 생산해 미국으로 수출하는 물량도 많다. 현대차 앨라매바 공장과 기아차 조지아 공장 생산 비중은 각각 70%와 40% 이하로 30%와 60% 가량을 국내에서 생산해 미국으로 수출한다.
기아차는 북미지역 물량 소화를 위해 지난 2016년부터 멕시코공장을 가동하고 있지만 이곳에서의 생산 물량 역시 트럼프가 손보려는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역내에 속해 있어 자유롭지 못하다.
자동차업계에서는 특히 북미 시장이 전 세계 어느 지역보다 가격 경쟁이 치열해 세이프가드 등의 조치를 당할 경우 판매실적에 치명적일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가 크다.
업계 한 관계자는 “특히 현지 생산물량이 현대차 쏘나타, 아반떼, 싼타페, 기아차 쏘렌토, K5 등 일부 차종으로 한정돼 있다는 점도 문제”라며 “고급차 브랜드인 제네시스와 그랜저 등 국내에서 생산해 수출하는 물량은 세이프가드 조치가 취해지면 가격 경쟁력이 크게 약화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한국산 자동차 부품에 대한 압박도 우려되는 부분이다. 미국 정부는 자국에서 생산되는 자동차에 사용되는 부품을 자국산으로 교체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현대·기아차는 미국 공장 인근에 부품계열사와 협력업체들이 함께 입주해 있지만 일부 부품들은 한국에서 조달해 사용하고 있다.
르노삼성도 미국의 수입규제가 있을 경우 큰 타격을 입는다. 르노-닛산 얼라이언스에서 르노삼성 부산공장에 맡긴 닛산 로그 미국 수출 물량은 지난해 기준 12만3202대로 르노삼성 전체 판매실적(27만6808대)의 절반에 육박했다. 르노 브랜드로 판매되는 탈리스만(SM6)과 뉴 꼴레오스(QM6)의 미국 판매물량도 르노삼성 부산공장에서 생산한다.
하지만 미국에서 한국산 자동차에 고율의 관세를 물린다면 르노-닛산 얼라이언스에서 르노삼성에 물량을 배정할 당위성이 희박해질 것으로 보고 있다.
◆ 국내 최대 수출 품목 반도체 부상...‘반덤핑’ 철강·화학도 타깃
국내 최대 수출 품목인 반도체도 미국 정부의 보호무역기조 불똥이 튈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는 최근 차세대 저장장치로 주목받고 있는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와 관련 전자부품들에 대한 관세법 위반 여부 조사에 착수했다.
SSD는 기존 저장장치인 하드디스크드라이브(HDD)와 달리 메모리반도체인 낸드플래시를 적용해 처리 속도가 빠르고 내구성이 좋다는 장점이 있어 최근 HDD를 빠르게 대체해 나가고 있다.
이번 조사는 미국 반도체 기업인 비트마이크로(BiTMICRO)의 제소에 따라 이뤄지는 것으로 이들 업체들이 메모리 관련 특허권을 침해했는지 여부를 조사하게 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외에도 델·레노보·HP·아수스·에이서· 바이오·트랜스코스모스 등이 조사 대상에 포함돼 기업들의 국가도 한국·중국·대만·일본 등 다양하다.
하지만 SSD 시장에서 삼성전자가 30%대로 독보적인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고 7위인 SK하이닉스까지 포함하면 국내 기업들이 절대적인 상황이어서 조사의 주 타깃이 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특히 이번 조사가 관세법 337조에 따른 제소로 이뤄진다는 점에서 향후 수입 규제 등으로 이어질 수 있는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337조는 미국 내 상품의 판매와 수입 관련 불공정행위에 대한 단속 규정으로 불공정 무역행위를 조사하는 ITC는 이 조항에 따라 미국 기업이나 개인의 지적재산권을 침해한 제품의 수입금지나 판매금지를 명령할 수 있다.
ITC는 현재 미국 반도체업체 넷리스트가 지난해 10월 말 SK하이닉스의 메모리모듈 제품에 대해 제기한 특허침해 소송과 테세라 테크놀로지가 제기한 삼성전자의 메모리 패키징 기술의 미국 특허 침해 주장에 대한 조사도 함께 진행하고 있어 반도체업계의 긴장감은 높아지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기업간 문제인 특허침해 소송이 향후 수입규제 등 무역 분쟁으로 꼭 이어진다고 볼 수는 없다”면서도 “하지만 가능성 자체를 배제할 수 없는 만큼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이라고 말했다.
이밖에 철강도 미국 정부의 보호무역주의 대응이 예상되는 분야다. 미국 철강업계는 그동안 한국산 철강 제품이 정부의 보조금 지원과 초과 생산된 중국산 철강 가공 등을 통해 저가 제품을 미국에 덤핑 수출해 오고 있다고 주장해 왔다.
미국 정부와 의회도 수입산 철강제품에 대한 모니터링 강화와 반덤핑·상계관세 관련 인력 증원 등을 통해 적극 대응할 태세여서 향후 관세 부과 등 조치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화학 분야에서는 ITC가 지난해 9월 한국 등 5개 국가가 미국으로 수출하는 페트(PET·폴리에틸렌 테레프탈레이트) 수지를 대상으로 반덤핑 조사 예비단계에 착수하는 등 보호무역주의의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다.
- 박영국 기자 24pyk@dailian.co.kr
- 이홍석 기자 redstone@dailian.co.kr